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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정신세계의 사나이, 마그리트
미술나들이 |
2006/12/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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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정신세계의 사나이, 마그리트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재미있게 본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은 영화 후반부에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을 멋지게 이용해서 목표를 달성한다. 수능을 마치고 논술을 준비하던 시절 찾은 2003년 우리 학교 논술 시험에는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나왔더랬다.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다섯시까지 이분 쯤 남았을 때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했다. 다섯시 도슨트 설명을 들으려고 맞춰 간 것인데(사실은 조금 더 일찍 가려고 했지만 늦었다), 전시 입장도 다섯시까지란다. 몰랐다. 자칫 못 들어갈 뻔 했다.
들어가니 도슨트의 설명이 막 시작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웬걸, 사람이 바글바글거린다. 그림도 제대로 못 보고 설명도 제대로 못 보고 앞사람 뒤통수만 보다가 집에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세 번째 그림 정도까지만 설명을 듣고 도슨트는 과감히 포기. 둘이서 따로 그림을 보기로 했다. 어느새 도슨트 무리는 우리에게 멀어져 설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짝 들은 설명에 의하면 미로같은 그림 배치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장이 직접 정한 것인데, 난해한 마그리트의 작품세계를 상징한단다. 마그리트 그림이 뭔 의미인지 알아 먹기 힘든 건 정말 사실이다. 보통은 제목을 보면 그래도 좀 알아볼만도 한데 마그리트는 그렇지도 않다. 하긴, 마그리트 본인도 자신의 작품과 제목은 별로 상관 없다고 했다니까. 게다가 자기 작품에는 상징도 없다고 했다. 어렵다.
그림을 보니까 마그리트도 꽤나 정신세계가 독특한 사람이다. 흔히 4차원에 산다고 하는 그런 사람. 상상력도 정말 풍부하다. 자신의 그런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이렇게 뿜어내다니,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포스가 마구마구 느껴진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가 시대 순으로 훑어 나가면서 마치 마그리트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마그리트는 이런 상상 속에서 살았구나.
나뭇잎, 나무, 새, 방울, 파이프, 중절모, 사과 따위가 그림 속에 많이 등장했다. 솔직히 이것도 각각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두고두고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작가가 좋아했나보다 하고 생각하는게 맘 편할까?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마그리트를 만났으니까 이제 서로 친해지면 되는 거다.
20분쯤마다 자꾸 나오는 폐관 안내 방송이 신경에 거슬렸다. 관람 시간은 여섯시까지였다. 늦게 간 잘못도 있지만 조용한 데 방송이 나오면 자꾸 깜짝깜짝 놀라는 데다가 초조해진다. 결국 50여분만에 관람을 마쳤다. 여자친구는 벼락치기로 봐야 기억에 많이 남는 거라며 웃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중 다수는 벨기에로 돌아가면 다시는 왕립미술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단다. 벨기에에 가서 오줌싸개 꼬맹이도 만나고 땡땡도 보고 고디바 초콜렛도 사먹을 생각은 있지만 언제가 될 지 모르니 지금 서울에서 봐두길 잘했다. 마그리트와의 즐거운 만남이었다. 정신세계가 남다른 분이라서 아직 서로 거리감이 살짝 있지만.
나오는 길에 아트샵에 들러서 엽서를 몇 장 샀다. 둘이 각각 두 장씩, 모두 네 장을 골랐다. 전시에 나온 작품 중에서 맘에 드는 것과 전시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좋은 그림을 집었다. 나중에 액자에 끼워 세워둘 생각이다. 프레임이 살짝 두꺼운 나무 액자 안에 넣으면 예쁘겠다.
밤에 보는 시립미술관 모습이 멋지다. 귀족의 저택같은 모습에 비춰지는 조명이 아름답다. 시청역까지 걸어나오는 길의 덕수궁 돌담도 낭만적이다. 그리고 길 끝에서 눈길을 사로 잡는 시청앞 광장 풍경!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루미나리에가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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