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형구, Vincent Van Gogh in Blue, 2006
01.
강형구는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극사실주의적이다. 얼굴의 주름 하나, 터럭 하나마저 섬세하게 표현했다. 사진보다 사진같다. 옛 조상들이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 했다더니, 꼭 그 정신을 이어받은 꼴이다. 가까이서 보기에 그림 표면이 맨질맨질하다. 역시 사진인가, 싶다. 맨 처음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하여 디지털프린트한 것인 줄 알았다. 허나 작품 이름 옆에는 'oil on canvas'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캔버스에 유화라고? 어떻게 그린 거지? 의문은 전시장 2층에서 풀렸다. 대충 보다가는 지나치기 십상인 한 구석에서 작가의 작업 장면 비디오를 보여주고 있었다. 유화물감을 테레핀유에 묽게 섞는다. 그리고 망으로 큰 건더기를 걸러낸다. 이렇게 만든 고운 유화물감액을 에어브러시에 넣어 뿜어대며 그림을 그린다. 그림 전체의 80%정도는 이 방법으로 표현한다. 덕분에 붓터치가 남지 않는다. 리얼리즘이 극대화된다.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그의 그림은 크다. 2m가 넘는 캔버스에 얼굴이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큰 그림을 이렇게 세밀하게 그리는 것은 굉장히 중노동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간다면 작품 전체의 반의 반의 반도 채 한 눈에 넣기 힘들다. 이렇게 작은 '부분'을 보며 그리는데 거대한 '전체'를 그리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에어브러시 때문에 수고는 배가 된다. 에어브러시를 관리하는 것이 퍽 어렵다. 또한 고운 물감 입자들이 날아다니는 통에 코를 막고 방진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 지하 작업실 공기도 탁하기 그지 없다. 이런 내공과 수고로 만들어진 것이 강형구의 그림이다.
02.
강형구는 초상화를 그렸다. 눈이 살아있다. 강형구의 작품에서 포인트는 '눈'이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 걸려있는 고흐의 얼굴은 그 안광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굉장한 카리스마로 나를 찌른다. 눈은 그가 그린 얼굴의 중심이 된다. 그 앞에 선 관객을 꿰뚫는 듯한 힘이 있다. 그의 작품은 내 키보다 훌쩍 크다. 그 안에 가득 담긴 얼굴이 얻은 존재감은 역시 대단하다. 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마치 그림 앞에 서서 모든 것을 드러내고 나의 죄를 고하는 느낌이다. 아는 그림 앞에서 완전히 벗겨진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오귀스트 르네 로댕, 마더 데레사, 앤디 워홀, 마리아 칼라스, 루드비히 반 베토벤, 에이브라함 링컨,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강형구.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라는 것이다. 강형구 본인의 자화상이 가장 많지만, 나머지는 대개 유명인의 초상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더니만 강형구는 그들의 눈을 통해 이미지를 드러낸다. 표정 없는 얼굴 속의 눈빛은 고흐의 카리스마, 달리의 광기, 칼라스의 고고함, 워홀의 거만함, 데레사 수녀의 온화함 등을 쏟아내는 창이 된다.
03.
전시장은 한산했다. 처음 들어갔을 때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그래서 부담없이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다 돌아보고 내려올 때야 갓 입장한 초등학생 관람객 두명을 마주칠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피카소와 워홀을 그린 작품이 담긴 엽서를 각각 한 장 씩 샀다. 아라리오갤러리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교통도 좋고, 좋은 곳이었다. 주변의 설치 미술 작품들도 마음에 든다. 다음에 다른 전시 때 또 찾아야겠다.
전시장 모습(출처_아라리오갤러리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