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모네전_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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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갑자기 무슨 귀신 포테이토칩 씹는 소리인가 하면, 강은 수 많은 물방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의 흐름에 따라 그 물방울이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다시 발을 담가봐야 아까 그 강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모네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헤라클레이토스랑 통하는 면이 있었나보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탁상 위에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다고 치자. 그 꽃을 한 번 보고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보면 같은 장면을 두 번 보는 걸까? 모네는 아니라고 했다. 그 사이에 빛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신경이 읽어들이는 그 장면이 미묘하게 바뀐다. 그래서 모네는 순간을 남기기 위해 인상주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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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지만 어제 흐르던 한강이나 오늘 흐르는 한강이나 같은 한강이다. 물이 흐르고 물방울이 움직이지만 강이라는 거대한 존재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이지 않는 어떤 통일성, 이걸 로고스라고 불렀다.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사 가면서 정원에 연못을 팠다. 뭐, 깊이 생각한 건 아니고 심심했거나 어딘가 쓸모 있겠지 하는 맘으로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이 연못이 모네의 수련 연작을 꿰뚫는 로고스가 되었다.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40년을 넘게 살았는데 여기서 그린 수련 그림만 2백 점이 넘는단다. 그리고 그 수련 그림이 모두 다르다. 첫번째 전시실(물 위의 풍경 : 수련)에 걸린 수련 그림들을 보는 것은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같은 연못을 보지만 같은 연못이 아닌 그 느낌.
1전시실 후반에는 좀 다른 느낌의 그림이 두 장 있다. 앞의 수련들은 푸른빛에 차분한 느낌이 감도는데, 이 두 점의 수련은 붉게 거칠다.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솔직히 좀 개떡같다. 한 층 올라간 3전시실에 가서야 알았는데 모네는 1911년에 백내장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1919년에는 그 증상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그 때의 그림은 붉고 추상적이다. 전시를 다 보고 다시 1전시실로 가서 확인하니 둘 다 그때쯤의 그림이었다.#02-03
두번째 전시실은 '가족의 초상'을 주제로 꾸며졌다. 모네는 초기에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던데, 내가 보기에는 후기에 풍경화를 많이 그리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모네의 인물화는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았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빛의 인상을 잡아내는 것이라면, 내가 보기에는 세번째 전시실에서 수련 연작들보다 인상주의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지베르니에서 꾸민 그의 정원을 그렸는데, 그야말로 '형태'라기보다는 하나의 '인상'이다. 가슴 속에 남은 풍경의 잔상을 그렸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식 다리, 수양버들, 장미정원에서 바라본 집... 쏟아지는 빛의 흐름 속에 형태가 녹아있는데, 내 맘에 꽉 차는 기분이었다.
#04-05
모네는 물의 작가이다. 네번째 전시실, '센느강과 바다'를 시작하는 곳에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정말 물을 쫓은 그림 인생이다. 물이 있는 풍경을 참 많이 그렸다. 이에 대해서는 모네가 동양 문화에 빠진 오타쿠같은 사람이어서 도가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내 생각이 단순한 것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물이 있는 풍경이 그릴 맛 제대로 나니까 많이 그린 건 아닐까? 모네는 빛을 중시했는데, 물은 물결에 따라 빛이 변하는데다가 주변 풍경도 거울처럼 비춰내니까 정말 즐겁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모네라면 그랬을 것 같다.
4전시실과 거기서 이어지는 5전시실(유럽의 빛)에는 앞의 전시실에 비해 "예쁘다"고 할만한 작품이 많았다. 왠지 기분이 흥겨워져서 재미나게 볼 수 있었다. 런던 국회의사당이라던가 채링크로스 다리를 그린 작품은 몽롱한 기분이 들어서 그것도 좋았다. 끌로드 모네, 채링크로스 다리, 1899-1901 #99
나오는 길에 소도록 한 권을 사는데 엽서도 한 장 골랐다. 무슨 그림으로 할까 하다가 '네덜란드의 튤립 밭'으로 했다. 밝고 화려한 색채가 경쾌하다. 수련 그림도 예닐곱종류 있었지만 많이 그려서 오히려 고르기 까다롭고 엽서로 보기엔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사랑의 레시피'라는 영화를 보니까 소스를 맛 보면서 어떤 재료가 들었는 지 하나하나 맞추는 장면이 나왔다. 모네는 풍경을 보고 자연의 빛을 하나하나 캐서 캔버스에 옮겼다. 언제나 느끼지만 화면이나 책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작품을 보는 것은 삼천리쯤 거리가 멀다. 모네는 역시 모네구나, 하는 감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상주의가 인기다. 인상주의 과열이라 할만하다. 돌아오는 겨울방학 시즌, 11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흐전을 한단다. 역시 방학은 블록버스터 전시다. 과열이니 어쩌니 해도 어쨌든 좋은 건 좋은 거고, 올 겨울에 또 다른 인상주의를 느끼러 시립미술관을 다시 찾아야겠다. |